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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속 이방인의 안식처, '비가톨릭신자 묘지'와 체스티우스 피라미드 이야기

by 똑똑똑32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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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별잡 지중해> 안희연 시인이 로마 외곽에 위치한 비가톨릭신자 묘지에 대한 내용정리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음 합니다.

 

📌 로마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소, 비가톨릭신자 묘지

로마. 수천 년 역사의 중심이자 가톨릭 신앙의 심장부인 이 도시는 누구에게나 신성하고 장엄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로마 한가운데, 신앙의 중심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이방인들을 위한 영혼의 정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비가톨릭신자 묘지(Cimitero Acattolico di Roma)**입니다.

이 묘지는 ‘영국인 묘지’(The Protestant Cemetery), 혹은 ‘비가톨릭 묘지’로도 불리며, 로마 시내 남쪽 트라스테베레 지역 외곽, 아벤티노 언덕과 테스타치오 지구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이집트풍 건축물인 체스티우스 피라미드(Piramide di Caio Cestio)가 위엄 있게 서 있습니다.

🌍 왜 로마에 ‘비가톨릭신자 묘지’가 존재하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비가톨릭신자들에 대한 장례를 교회 구역 안에서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단자, 개신교도, 자살자, 유대인 등은 축성된 땅에 묻히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거주하거나 여행 중에 세상을 떠난 비가톨릭 외국인들은 성 베드로 성당이나 로마 교구 묘역이 아닌 ‘비공식 묘역’에 묻히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17세기 말부터 외국인 공동체는 트라스테베레 외곽에 조용한 장소를 마련해 그들의 고인을 매장하기 시작했고, 이는 18세기 초 ‘비가톨릭신자 묘지’로 공식화되었습니다.

✒️ 예술가와 시인의 안식처: 괴테, 셸리, 키츠, 오스카 와일드

이 묘지는 단순한 묘지가 아닙니다. 이곳은 유럽의 문화와 철학, 낭만주의의 사유들이 깊게 스며든 공간입니다.
특히 문학가와 예술가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유명합니다.

🕯️ 존 키츠 (John Keats)

영국 낭만주의 시인으로, 결핵으로 요절한 그는 “여기에 이름도 없이 누워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묘비에 남겨졌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퍼시 셸리의 유해도 이곳에 있습니다.

🕯️ 퍼시 비시 셸리 (Percy Bysshe Shelley)

Cor Cordium(심장의 심장)”이라는 묘비 문구로 잘 알려진 그는 이탈리아 바닷가에서 익사한 후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괴테 자신이 이 묘지에 묻힌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곳을 두고 “로마에서 가장 평화롭고 감동적인 장소”라고 극찬했습니다. 그의 아들 아우구스트 폰 괴테는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와일드 역시 생전에 이 묘지를 방문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죽음조차 예술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이 묘지는 종교적 배제를 넘어선 예술의 공동체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국경과 종교, 시대를 초월한 ‘존재의 존엄’**을 기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 체스티우스 피라미드: 이탈리아 속 이집트, 고대의 시간과 맞닿다

묘지 옆에 우뚝 솟은 체스티우스 피라미드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닙니다.
이 피라미드는 기원전 12년, 로마의 귀족 가이우스 체스티우스(Caius Cestius)가 자신의 무덤으로 건축한 것입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이집트 문명이 유행하던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높이 약 36미터, 각 면의 길이 약 30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구조를 자랑합니다.

이 피라미드는 상징적으로 ‘영원함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렇듯, 인간이 유한한 생을 살면서도 무한한 시간 속에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염원을 품은 것입니다.

비가톨릭신자 묘지와 나란히 서 있는 이 피라미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로마라는 천년 도시가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관용의 도시로 변모하는 상징적 배경으로도 읽히며, 종교적 경계 너머의 인류애를 보여줍니다.

🌿 지금 이곳은 어떤 모습인가?

오늘날 비가톨릭신자 묘지는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고요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드리워지고, 각국 언어로 적힌 묘비들은 마치 작은 인문학 박물관처럼 다가옵니다. 묘역 곳곳에 핀 꽃들과 돌의 문양, 섬세한 조각상들은 삶의 끝에서 되묻는 ‘존재의 의미’를 우리에게 던집니다.

관광객들보다는 사색가, 시인, 철학자들이 즐겨 찾는 이곳은 현대인의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춤과 사유를 허락하는 공간입니다.

 

📝 마무리하며 – 죽음이 머무는 곳, 생을 노래하다

‘비가톨릭신자 묘지’는 로마라는 도시가 얼마나 열린 감수성과 포용의 정신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가톨릭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비신자’들에게 허락된 작은 공간이 오히려 그 누구보다 사람답게 죽음을 맞이하고, 존엄하게 기억될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괴테와 오스카 와일드가 감동했던 이유는 단순한 미학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이 공간에서 죽음조차 예술이 될 수 있고, 타자조차 환영받는 세계의 가능성을 본 것이 아닐까요?

한번쯤 로마를 찾는다면, 꼭 성 베드로 성당이나 콜로세움만이 아니라 이 조용한 묘지를 들러보세요.
그리고 묵묵히 속삭이는 묘비들을 읽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비가톨릭신자 묘지'와 체스티우스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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