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남기는 단 한 줄의 문장.
묘비명은 단순한 이력의 나열이 아닌, 살아온 방식의 고백이며 죽음을 향한 시적 응답입니다.
tvN '알쓸별잡 지중해'편에서 출연진들이 묘비명으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물들의 묘비명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감성을 함께 되짚어봅니다.
유현준 건축가 – “죽은 자를 통해 산 자를 비추는 묘비”
tvN ‘알쓸별잡 지중해편’에서 유현준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화목하게 하려고 했던 사람, 그런 건축가.”
“비가 오면 물이 담겨, 그 물에 얼굴을 비춰보게 만드는 그릇 같은 묘비를 만들고 싶다.”
건축가다운 상상력으로 묘비를 ‘비추는 공간’으로 설계한 그는, 죽은 자의 말보다 산 자의 얼굴이 더 많이 떠오르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는 “죽음을 기억하는 동시에, 내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묘비를 새롭게 해석한 시도입니다.
안희연 시인 – “백지 안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
비가톨릭묘지를 방문한 시인 안희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 한 권의 책, 단 한 페이지, 단 한 줄의 문장, 단 하나의 단어,
마침내 백지 안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 여기 잠들다.”
이 묘비명은 마치 글쓰기 자체가 삶의 은유였음을 드러냅니다.
삶은 문장이고, 죽음은 그 문장이 끝난 뒤 펼쳐지는 하얀 여백. 백지는 끝이자 동시에 시작입니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불교의 ‘공(空)’, 니체의 ‘영원회귀’와도 철학적으로 닿아 있습니다.
김상욱 교수 – “원자에서 저 원자로”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원자에서 저 원자로.”
인간은 결국 원자의 집합이며, 죽음은 원자의 재배치. 이 묘비명은 자연 과학적 존재론을 담은 한 줄로, 죽음을 소멸이 아닌 전이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자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현대적 시각을 보여주는 상징적 문장이기도 합니다.
나태주 시인 –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더 참자”
나태주 시인은 ‘보고 싶다’는 말로 사별의 고통을 다독이되, 거기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짧고도 깊은 이 문장은 마치 떠난 자가 남은 자에게 보내는 사랑의 엽서 같습니다.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닌 재회의 기다림이라는 인식을 주며,
이는 한국적 정서 속에서 사별을 위로하는 언어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결론 – 당신이라면, 어떤 한 줄을 남기고 싶은가요?
묘비명은 죽은 자의 마지막 말이자, 살아 있는 사람에게 던지는 가장 짧고 깊은 질문입니다.
✍️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지금 떠올려 보세요.
당신이 남기고 싶은 단 한 줄의 문장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