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별잡-지중해 편>에서 가수 윤종신과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가 특별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번화한 도심에서 벗어난 그들의 발길이 닿은 곳은 바로 수천 개의 해골로 장식된 ‘해골 사원’, 정식 명칭으로는 카푸친 수도회 납골당(Crypt of the Capuchin Monks)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갔지만, 이들이 마주한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철학과 경건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괴기스러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곳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수도사들의 신념이 고스란히 녹아든 공간이었죠.
수도사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
카푸친 수도회는 16세기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가난과 겸손, 근면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생전에 소박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화려한 무덤이나 특별한 예우 없이 단순하게 공동체 안에서 함께 묻히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해골 사원은 수도사들이 사망한 뒤 유해를 수도원 안에 보존하고, 유골이 되면 그 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에 재배치한 장소입니다. 두개골, 정강이뼈, 골반뼈 등을 조화롭게 배열하여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샹들리에까지 만들어낸 이 공간은 마치 죽음과 예술, 신앙이 하나로 어우러진 상징적인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죽음을 가까이 두는 삶"
이 납골당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일상 속에서 마주하라. 수도사들은 해골을 단순한 유해가 아니라 삶의 무상함과 평등함을 기억하게 해주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이곳에는 누구의 유해인지 이름조차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모든 수도사가 동등하게, 한 공간에 함께 모셔졌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이자 신앙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의 일상과 함께했던 납골당은 단지 유골을 보관한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신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공간이었던 것이죠.
관람객에게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
<알쓸별잡>에서 심채경 박사는 해골 사원을 둘러보며 "이 공간은 단순한 기괴한 전시물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경건하게 기리는 철학의 공간"이라고 말했습니다. 해골을 보기 전, 이곳에 안치된 수도사들의 삶을 소개하는 전시물을 먼저 보게 되는 구성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먼저 알고, 그 이후에 그 유해를 마주하게 되는 흐름은 방문객들에게 더 큰 경외감을 안겨줍니다.
윤종신 역시 “기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고 묵직한 울림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깊이 있게 다룬 장소는 로마에서도 흔치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현대 사회는 죽음을 점점 더 외면합니다. 장례식장은 도심에서 멀어지고, 죽음은 일상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들의 철학은 반대입니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삶을 더 깊고 진지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철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마무리하며
로마 해골 사원은 단순한 명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수도사들의 태도와 철학이 응축된 공간입니다. 수천 개의 해골이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경외심과 평등, 신앙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죠.
혹시 로마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곳을 일정에 꼭 넣어보세요. 아름답고 웅장한 유적들 사이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성찰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